벗삼아



영화 인셉션을 네번째 보고 난 뒤 2014

주말
인셉션을 또 한번 봤다.
이걸로 네번째다
같은 영화를 여러번 보다보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여 내가 자주 하는 짓이다.

디카프리오가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런말을 한다.

생각이란 바이러스와 같아
회복력도 빠르고 전염성도 강하지

생각을 심는 인셉션 작업에 들어갈 때 인셉션의 위력을 설명하려고 했던 대사 중에 저런 대사가 있었드랬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도 두려워 했듯이 생각을 심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고
극중 와이프 맬 역시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영화는 영화니까 극단적인 결과에 치닫을 수 있지만
생각을 유화해서 해보면 저 말은 정말 모두가 조심히 귀담아 들을 말이다.

대사가 하나 더 있다.


고착화된 생각은 강하게 여기(머리)에 박히기 때문에
그걸 바꾸기는 정말 어렵지

여야의 삽질과 더불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에서 국론 분열이 이렇게까지 심한 적은 내 생전엔 처음이다.
광화문과 시청이 이렇게까지 시끄러운것도 처음 본다.
촛불시위 첫 발발때는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였다.
지금은 시위대끼리도 싸운다. 시위를 시작한 사람들과 이에 반대하는 또 다른 시위자들 말이다.
디카프리오처럼 다들 재우고 꿈 속에 들어가서 생각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의 싸움보다 국민여론끼리의 분열과 싸움이 더 심각해보인다.
오히려 어떤 사안에 대해선 정치권이 더 단합이 잘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명대사를 전에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적이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국민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여러가지가 되다보니 생긴 부작용 중에 하나다.

자유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걸 머리로는 모두 알고 있는 듯 보인다.
행동은 그렇게 안하니 문제다.
군사정권때나 그런걸 나라에서 잡아다 고문하는 식으로 막았지
오늘날 같은 민주화 이후에 그런건 상상할 수도 없다.
그건 말할 여지도 없는 일인데 문제는 잡아다 족치는 시대가 끝난 대신 스스로가 스스로의 발언을 통제하고
이에 벗어난 언행을 했다면 그에 대해 사과하고 응당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게 맞다.
요즘 세상을 가만히 보자면 그런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음모론이니 뭐니 이걸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특히 그러하다.
어찌보면 공인들보다 말조심을 더 해야하는건 일반인들이다.
공인의 발언이 더 영향력이 있는 것은 맞지만 횟수로 따져보면 공인들이 말을 하는 것보다
일반인들이 인터넷 세상에 떠드는 횟수가 몇곱절은 더 많다.
요즘같은 소셜네트워크 시대에는 전파도 빠르게 되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정보가 범람수준까지 쏟아지다보니 사람들은 해가 갈수록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정보에 대해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다.
해가 쌓일수록 그 정보들은 뇌에서 고착화가 되고 이건 나의 생각이 아닌데 나의 생각인것처럼 어느새 변해버린다.
다음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나의 생각인것처럼 되어버리는 순간 그걸 기정사실화 해버리게 된다.
그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보게 되면 바락바락 대항한다.
그렇게 자신의 의견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모르는 생각에 사로잡혀 반대 세력과 싸우는 동안
생각의 고착화는 더 심화한다.

더 골아픈 문제는 이 다음인데
광우병 사건을 예로 들어보면
결국 몇 해 지나 당시 제기됐던 의견들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다.
아니면 이건 더 나쁜 사람들인데
그냥 입 꾹 다물고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있는 사람들이다.
당시 많은 공인들도 의견을 피력했다.
소셜 공간의 다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다 조용하다.
하나의 발언에 대한 허실이 밝혀지면 이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하는 것이 맞다.
본인이 틀렸다는게 나오니 조용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 여러가지 사건이 터졌다.
세월호를 비롯한 요즘 시끌시끌한 사건들이 터졌고 현재진행형이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사실관계 라는걸 굉장히 등한시 하고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칭 애국보수라는 일베 회원들과 이와 반대편 진영에 속하는것으로 보이는 오유 하는 사람들
장난이든 진심이든 나는 보수다 진보다 하여 각자의 의견을 내는 사람들 모두 말이다.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지고 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쌓이다보니 생긴 사회문제다.

나는 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 배운 걸로만 생각해도 이건 문제가 있다.
법정에서는 증거가 전부고 또한 심증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해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는 범죄자들도 있다.
이가 갈리고 분통터지는 증거불충분 무죄 판결도 있다.

애써 잡은 악질 범죄자놈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검찰쪽은 오죽 이가 갈리겠는가?
경찰은 더 분통터질것이고...
그럼에도 법에서는 증거불충분이라는 판결이 나온다.
심증이나 정황만으로 판단하여 처벌하면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광우병 사태만으로도 물증이 부족한 여론몰이가 어떤 혼란을 초래했는지 훌륭한 예시가 나와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둘로 갈린 여론사이에서 둘 모두 음모론 제기에 환장해있다는 것이다.
팩트 팩트거린다는 일부 일베회원들도 소위 음모론자들을 씹을 입장은 못된다.
단식투쟁을 했던 모 아저씨와 그 분의 고인이 된 딸에 대해서 헛소문을 퍼뜨렸었기 때문에 저들도 이런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대체 이런 헛소문은 왜 생기는 걸까?
좌우를 막론하고 하는 짓은 영 누가 좌고 우인지 구분도 못하겠다.
그냥 전후 관계는 세세히 따져보지도 않고 말부터 먼저 나가는 사람들만 지천에 널린 느낌이다.

그 반대편 이야기를 해보면
그쪽에선 그 반대에서 팩트 팩트거리는거에 짜증을 내면서도 이에 대한 반박은 소위 팩트나 물증으로 입증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일베충새끼라고 욕할 뿐
아까 증거불충분 무죄판결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대부분 정황상 그리고 심증에 대해서 굉장히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
위에서 길게 썰을 풀었듯이 결과는 질 게 뻔하다.
검찰 측에서도 증거불충분으로 풀어주는건 범죄자 새끼가 밉지만 이를 갈며
그래 이새끼 잘도 증거를 숨겼네 다음에 두고보자
하는 거다. 이번판은 범죄자 새끼의 증거 인멸 능력을 인정하는거다.
근데 이쪽사람들은 인정을 참 안한다.
증거불충분 사안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주욱 둘러보면 말이다.
물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있는 것도 제대로 설명 못해서 유죄 판결은 못 받아낸다.
쉽게 말하면 능력부족이 아닌가 말이다.
권력자들이 다 한통속이라서 지들끼리 짜고 치기 때문에 유죄 판결이 안나오는거다?
그럼 그걸 입증해내면 된다.
근데 못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쪽 사람들도 일베충이라고 욕먹는 사람들만큼 답 안나오는 사람들이다.


디카프리오가 경계했던 생각의 고착화는 발전된 오늘날 기술의 산물들과 만나서
좌우 할거 없이 사람들을 좀먹고 있다.
그렇다고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답답한 현 상황이다.
민주화 이후 헌법은 국민의 자유를 보장해주었다.
꿀을 먹는것도 독을 먹는 것도 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따라서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의 탓이다.
국가가 권력을 투표를 권리를 모두 국민에게 돌려준데에 대한 책임이 그것이다. 
도저히 저사람의 딱한 상황은 국가가 좌시할 수 없겠구나
하는 사람만 인간의 기본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조금 도와준다.
요즘은 그런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현 사회에서 개인은 본인 스스로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안된다.
사극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자주하는 말처럼
성심을 바로 하시어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국민이 흐트러지면 나라가 흐트러질 수 밖에 없다.
말이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모든 것에 대해서 권리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행해야 한다.
국민들이 그러하다면 나라는 흐트러질래야 흐트러질 수가 없다.
그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휘둘리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정부의 정책과 입법부의 방향도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를 반복한다.
이번 정부에 대해 무책임한 정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인인 국민들이 휘청휘정 갈대 같으니 그 대리자들은 오죽하겠는가
책임의식 없는 주인 밑에는 무책임한 하인들이 모일 수 밖에 없다. 



요즘 지내면서 느끼는 것들 여러가지 2014

우리는 왜 떨어질까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브루스 웨인 아부지 '배트맨 비긴즈'

도박은 뭐라고?
파도,,,,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는거야!! 이것들은 이제 다 뒤졌어
-호구 '타짜'




생활 패턴이 단조로워지다보니
그전에는 그 주기가 짧지 않았던 일들이
아주 짧은 주기로 벌어지는 것 같다.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
똥물에 처박히는 기분
양 극단이 짧은 주기로 일어나니
우울증,조증 환자들이 많아진다는 기자들의 말이 헛소리는 아닌거 같다.

8명중에 1명이라는 통계가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미치지 않고 잘 살아가는 나의 이름 모를 동지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나만 그런것만은 아닐게지만
사람이란게 생활이 느슨해지면 한량같이 되고
생각이 없어지고
1차원적 쾌락을 자꾸 원하게 되고 그런거 같다.

후회와 반성의 반복이 무한궤도를 그린다.
그리고 후회는 가지고 있던 걸 잃었을 때 가장 크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 느낀 통찰은
반성은 뭔가를 성공했을 때 크다는 것이다.


내가 학생 때 같이 외부활동을 했던 친구중에 한 명이 있는데
그때도 느꼈지만 굉장히 배울게 많은 친구였고 지금은 더 그렇다.
사소한 일상에 허언이 아닌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친구고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는 친구다.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가지고 싶은 마인드를 어린 나이에 이미 완성 반열에 올려 놓은 친구다.
지금은 전혀 사적 교류가 없지만 sns를 통해 종종 소식을 접하면
변함 없는 모습에 놀라며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마음을 다잡곤 한다.
그 친구와 그리 친분이 깊진 않아 자세한 내면은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아온 모습과 지금 보고있는 모습만으로도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친구다.


언제부턴가 내가 페이스북을 싫어하게 된 건
그 공간에선 내가 도대체가 진중해 질 수가 없게 되버린 이후였다.
그 공간에서도 진중한 이야길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난 그렇지가 않다.
생각의 공유라는 것도 장소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진의가 왜곡될 수 있다.
웃고 떠들고 신명나는 자리에서 진지한 이야길 꺼내봐야
다음날 어제 뭐라고 했었드라?
이런 상황만 나올 뿐이다.
종류를 헤아리기도 힘든 글과 생각들이 난무하는 장소에서
이랬다 저랬다 진지했다 웃겼다를 넘나드는건 거의 초인급의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의도했던 진의가 개밥이 되기 십상이다.
보는이나 말하는이나 마찬가지이다.
웃어나 보자 라고 생각할 때 가는 집이 주커버그가 만든 저 집이다.
우울증과 조증 환자가 잠재적으로든 현재진행형이든 늘어나는 현상이
괜히 일어나는게 아니다.


울음을 참는거 보단 웃음을 참는게 훨씬 더 힘들다.
반대로 같이 울긴 어려워도 같이 웃긴 쉽다.
웃는 낯에 침뱉기는 어렵지만 우는 낯에 대고 웃기는 쉽다.
심리학의 심자도 모르는 나지만 이건 그저 내 짧은 인생살이에서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들이다.


어느 세월에 직장 잡아서 평범하게 좀 살아볼까 했던게 바로 몇 년전이다.
세월이 참 빨라서 벌써 2년차가 되었는데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생활이라서 아쉬움이 조금 있다.
내가 과거에 쓴 일기들을 하나 하나 되짚어 읽어 볼 때면 그런 느낌이 더욱 커진다.
그 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자주 쓰는 단어까지 변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직장을 잡고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지면 굉장히 어른스러워져 있을 줄 알았다.
아쉽지만 지금 그러지는 못했다.

숫자만 만지면서 대학생활부터 지금까지 몇 년을 그러다 보니
본래 미천했던 글재주가 더 형편없어졌지만
지금이라도 활자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내가 행정학을 버리게 했고 인문학과 사회학을 등한시하게 만들었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정답이 없는 답이 안나오는 헛물켜기
뜬구름만 잡는 쓸모 없는 신선놀음
책상다리에 앉아서 탁상공론만 펼쳐서 어디다 쓸라고?
등등 내가 극심하게 비판적이었고 싫어했던 상기의 학문들과 그 안에 담긴 철학들이
현재의 내가 부딪힌 한계를 넘어서게 해 줄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요새 들었다.
이에 대해서 이불 뚫고 하이킥을 할 정도의 부끄러움이 있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선 내가 감히 업신여겼던 저 생각들을
구체화하고 실제 실현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저 위대한 생각들은
철학은 없이 기계같이만 살았던 나같은 사람들에게 심장을 붙여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심장이 빨리 이식되기 위해선 그들의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무회계 시간에 강의를 하던 회계사가 우리한테 얘기 했던 것처럼 말이다.
'회계를 잘 할라믄 직접 연필로 분개를 써보고 니가 계산기로 두들겨서 계산과정 다 써보고 재무제표도 한 번 니가 손으로 써서 만들어봐야 돼, 그래야 늘어"


연차를 쓰고 널럴한 오늘 하루에 그 동안 머리속에 있던 걸 밖으로 죄다 끄집어내봤다.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분명 내일이 되면 내일 이시간즈음이 되기 전까진 차분해질 시간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루에 얼마 만큼은 이런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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